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클로드 오킨렉 (문단 편집) === 돌아온 인도군 생활 === 인도군 총사령관으로 돌아온 오킨렉은 인도 군인들을 배려한 정책을 취했고[* 인도 식민지군에서 대대장과 사단장을 역임하는 등 오랫동안 인도에 체류했기 때문에 인도인들과 친했고 인도 문화에도 익숙했다.] 이에 많은 인도 군인들이 오킨렉을 좋아하였다. 이렇다보니 인도군은 그에게 충성을 다하며 버마 전선과 북아프리카 전선, 이탈리아 전선에서 활동하였는데 특히 북아프리카에선 뛰어난 지뢰 제거로, 이탈리아의 몬테카시노 전투에서는 용맹한 부대로 활약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군과의 실질적인 교전은 신설된 동남아시아 지역 연합군 총사령부(SEAC)와 그 총사령관 [[루이 마운트배튼]] 해군원수에게 맡겨지면서, 오킨렉의 업무는 인도 지역 치안유지와 후방지원에 국한된다. 처칠과의 불화로 야전지휘관으로서의 업무는 사실상 종언을 고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마-인도 전선에서 활약한 지휘관들은 오킨렉이 인도를 잘 통제하면서 전쟁 수행에 큰 지원 역할을 했다고 인정한다. 한편 급박한 전쟁 중에 오킨렉의 뒤통수를 치는 사건도 벌어진다. 오킨렉은 상당한 애처가로도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아내 제시가 영국 공군의 리처드 피어스(Richard Peirse) 대장과 바람이 난 것이다. 피어스 장군은 전쟁 초기에 영국 공군 폭격기부대 사령관이었다가 1942년부터 인도로 전보되어 인도주둔 영국 공군 및 동남아시아 지역 연합군 공군 총사령관 직을 맡게 되었다. 마침 오킨렉은 피어스와 개인적인 친분도 깊어 임지인 인도에서도 두 가족 사이에는 왕래가 잦았는데… 이게 화근이 되어 불륜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인도를 책임지는 최고위급 사령관 가족 사이에 벌어진 이 불륜 사건은 큰 이슈가 되었다. 1944년 초에 불륜의 낌새를 눈치챈 마운트배튼 [[제독]]은 영국 공군 참모총장인 찰스 포털 장군에게 빨리 이들을 떼어놓아야 하니 피어스 장군을 본국으로 소환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불륜관계가 널리 알려지고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이 되자, 마운트배튼 제독은 1944년 11월에 피어스 장군을 보직해임시키고 제시 오킨렉과 함께 영국으로 보내버린다. 이후 피어스 부부는 1945년에, 오킨렉 부부는 1946년에 정식으로 이혼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